부들부들
젊은 의대생들은 모르는 시민사회의 두려움과 넘지 말아야 할 선 본문
규모의 차이, 내실의 차이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어느 조직이든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선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사회적 합의일 수도 있고, 의회가 합의한 법률일 수도 있고
국제관습법과 같이 성문화 되지는 않았지만 국가와 국가가 암묵적으로 지키기로 정한 규칙일 수도 있습니다.
문명화 된 국제사회, 제도권 위에서 존재하는 시민사회에는 이런 규칙들이 설사 성문화 되지 않았다 할 지라도
개인, 집단, 나아가 국가라는 거대 조직에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위력이 어마어마 합니다.
가령, 미-이란 사이에서 벌어졌던 갈등 간에도 한국 해군이 이란으로부터 노골적인 적대적 위협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청해부대는 아덴만 해역에서 상선의 보호와 평화유지 활동을 할 뿐, 이란의 관할 하에 있는 수역에서 적대적 행동을 한다거나
이란에 군사, 경제적인 위협을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이란 정부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확신은 우리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란 정부가 우리에게 '갖는' 것이며, 그것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문명화된 국제사회에서 절대 함부로 뻘 짓 하지 않을 국가라는 '예측 가능성' 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측 가능성만큼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홍콩에 근거지를 둔 많은 금융사들이 홍콩을 떠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거나 눈치를 보고 있는데요
금융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영어가 통용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국제공항과 항만이 멀지 않아야 하며,
셋째, 언제든 자사의 자산을 국경 밖으로 안전하게 옮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홍콩은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 이 세 번째 항목에 대해 의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예측 가능'하지 못 한 국가가 되었다고 가정합시다.
핵을 마구 전력화 하고, 다국적 투자사의 국내 자금을 절차 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동결하거나 몰수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디테일한 이유에서야 잠시 국뽕이 차오를 수도 있겠지만 국제사회에서 싸우스 코리아는 예측 불가능한 국가가 되버리는 겁니다
그 후에 대한민국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미국이 아무리 깡패라지만 노스 코리아를 아예 봉쇄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예측 불가능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나름의 이유야 있다지만 그들은 너무 자주 선을 넘어 버렸지요.
국내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부산에서야 가끔 러시아 마피아들이 세력 싸움 중에 총을 쓰는 바람에 대서특필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한국은 최대의 폭력조직도 대놓고 총을 사용하지 못 하는 총기로부터 안전한 국가입니다
총기 사용은 대한민국의 치안이 정해 놓은 일종의 마지노 선인 겁니다
만약 어떤 폭력 조직이 지들 용어따나 전쟁을 위해 총을 사용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군인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아마 가루가 될 겁니다. 이게 바로 '선' 입니다.
2016년. 친위 쿠테타와 계엄령 문건이 발견이 됐지만 그들은 60년대,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호기롭게 군을 동원하여 시민들을 학살하지 못 했습니다.
말 할 수 있는 이유와, 말 되어질 이유가 있었겠지만, 만약 군이 광화문에서 격발을 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예측 가능한" 선을 넘게 되는 거였습니다. 시민들, 그리고 당시 야당 정치인들, 일부 언론인들의 승리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계엄령이 발동되면 출동하여 근무를 서게 될 장병의 "생각"조차 일종의 '선' 이었던 겁니다
만약 그들이 그 선을 넘었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예측 불가능해진 정부' 혹은, 법정이 아닌 처형대였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선' 이 성립토록 하는 것들 중에는 득실을 따졌을 어느 깡패 국가의 외교관들도 있었을 테고요
그때 자유롭게 집회를 마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던 모습이 ABC, CNN, BBC, 등 글로벌 미디어로 보도가 되면서
싸우스 코리아라는 나라는 더욱 더 "예측 가능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반면, 홍콩은 그렇지 못 했지요. 그 결과가 바로 2020년 대한민국의 서울과, 중국의 홍콩입니다. 두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또한, 선을 넘지 않는 것. 예측 가능한 선 안에 존재하는 것.
이것은 동시에 그 행위에 있어 "명분"을 쥐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내 주장의 이유가 옳다고 생각 되더라도 그것이 시민 일반의 생각과 괴리된다면 그 주장은 이해받기 어려우며
그 주장을 위한 투쟁은 아무리 피를 토하는 치열함을 동반한다 할 지라도 시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기 마련입니다.
왜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상경하여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 모이는 걸까요?
보여지기 위합니다. 그래야 언론에 보도가 되고, 더 많은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수 있으니까요.
그 주장이, 때로는 울분이나 진실에 대한 고발이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내면 주장은 공중의 의제로 탈바꿈 하게 되고
비로소 붉은 머리띠를 한 일부의 구호는 시민 전체의 구호가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집단을 움직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개의 풍경이 있습니다.
2008년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은 매를 맞는 경찰을 둘러싸며 그들을 폭행하는 대신, 그들을 감싼 채 비폭력을 외쳤습니다
당시만 해도 긴 진압봉과 방패로 무장한 의경들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경찰버스에 잡아 가두던 때임에도 말이지요
집회 현장에서 외쳐진 '비폭력' 은 집회에 나온 시민들이 결코 '선' 을 넘지 않는, '데모쟁이' 가 아닌 '나의 이웃' 이라는 이미지를
방에 앉아 컴퓨터로 집회를 보던 시민들에게 전달해 주었고, 그렇게 현장의 시민들은 "예측 가능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때 만들어 진 "예측 가능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는 2016년, 더 많은 시민들을 아이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양대 노총 중 한 집단은 다수의 시민들이 염워해 마지 않던 정부가 탄생한 직후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 근무복을 입고 서 있던 의경과 경찰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주장은 시민들에게 전달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지금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나요?
젊은 의대생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전공의들에게도 대의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그들 스스로 시민들이 "의사 선생님" 이라 불러주며 만들어 준 "선",
아픈 환자가 찾아 간 곳에 "의사 선생님" 이 계실 거라는 "예측 가능함" 을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이 파급은 엉뚱하게 나타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응급실에서 폭행 당한 당직의를 대신해 분노해주는 댓글 대신, '잘 쳐맞았다', '쳐맞을 짓을 했겠지' 등과 같은 악플이 달릴 수 있습니다.
조직으로부터 가해지는 정말 불합리한 처우나 대우로 그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시민들이 등을 돌릴 수도 있으며
클릭 수에 눈이 먼 기자들이 시민과 의료인들 사이를 이간질 하여 그들을 '돈에 눈이 멀어 데모나 하고 앉았는' 놈들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명분" 이 없는 주장은 없습니다.
남한산성에서 화친을 읍소하는 최명길과, 항전을 고하는 김상헌에게는 저마다의 "명분"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의"는 같았습니다. 조선 백성들의 안위였습니다.
명길은 청나라 황제에게 엎드려 남은 백성들을 구했고, 상헌은 청으로 압송된 후 백성들을 데리고 조선으로 돌아오려 애썼습니다.
투쟁에 있어 대의는 충분조건이지만, 명분은 필요조건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 질 때 메시지는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회가 바뀔 가능성을 얻는 것입니다
결코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을 얻는 것입니다.
2016년 집회 때 김어준, 주진우, 일부 메이저 언론사의 미디어 엘리트들은 필요조건을 찾기 위해 몸으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공분하여 충분조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가 2020년의 우리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얻어진 가능성을 가지고 바뀔 세상을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젊은 의사들은 필요조건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왜 들어주지 않느냐고 이야기 하지만
충분조건인 "대의" 는 시민들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 하고 있습니다. 되레 다수의 시민들을 적으로 돌려 세웠습니다.
이 바보들... 야 이 똥멍청이들아...
서울대학교 본원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전공의가 나눠 주는 유인물을 받았습니다.
그곳을 드나드는 어떤 환자나 보호자도 그들이 돌리는 유인물을 매몰차게 외면하거나, 함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환자들에게, 보호자들에게 여전히 그들은 믿어야 하는 "선생님" 이며, 내 담당의의 입술은 신의 입술이기 때문입니다
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단순히 의사라는 집단이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엘리트집단이기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들이 교사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를 다 했듯, 그들이 '사람 목숨을 살리는 훌륭한 사람' 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시민들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부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선대가 쌓아 온 그 업적이자 영광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그어 놓은 '선'을 밟아버리는 방법으로
시민 사회의 합의만큼이나, 시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선" 이 붕괴되면 그걸 회복하기까지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 비용에 무형자산이 포함되어 있고, 무형자산을 복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유형자산의 그것보다 몇 배는 비싸다는 건
바보도 압니다.
방금 젊은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정부가 제시한 "선" 을 넘어버렸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동네에서 조폭끼리 칼 들고 싸우면 경찰이 오지만, 총 들고 돌아다니면 군대와 국정원 아저씨들이 옵니다
사실 군대보다 더 무서운 건, 군대가 실탄을 쏴서 사살해도 누구도 강경진압이라고 안 하는 시민들의 생각 입니다
이번 일로 정부는 욕을 먹을 겁니다.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것. 그게 정부의 역할이니까요
그러나,
야... 니들 좆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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